2015. 2. 12. 19:36ㆍ보기
정당해산심판에 진보당측 대리인으로 나선 변호인들이
헌법재판소의 진보당 해산결정을 조목조목 비판한 책이 나왔습니다.
가히 헌법학 교재로 쓰여도 좋을 만한 내용으로 꽉 차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정당해산심판을 현장에서 변론한 그 사람들이 엮어낸 책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독재정권의 폭주는 어디까지 이르렀는가 궁금한 당신에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인지 걱정인 당신에게 권합니다.
87년 헌법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사람들의 필독서!
지금, 교보문과와 알라딘에서 만나세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무엇이 문제인가> 발간 기념
기자 회견 설명문
변호사 김선수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한 이유>
안녕하십니까.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재판에 의해 정당이 해산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사건에서 피청구인인 통합진보당의 소송대리인단 단장으로 활동했던 변호사 김선수입니다.
제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것은 1차적으로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로부터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11명의 변호사들(이재화, 김진, 전영식, 이광철, 이한본, 이재정, 고윤덕, 윤영태, 신윤경, 최용근, 김종보)이 같이 했고, 소위 내란 관련 사건이 본격적으로 심리될 때 소송대리인단의 부탁으로 내란 관련 사건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5명의 변호사들(천낙붕, 심재환, 하주희, 조지훈, 김유정)이 합류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리인단 12명의 변호사들은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니었습니다. 이재화 변호사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30번에 등록되어 있고, 다른 변호사들은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점은 이재정 변호사가 최후변론을 하면서 솔직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기꺼이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이 된 것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여부에 관계없이, 이 사건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진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통합진보당조차도 관용하지 못하는 사회와 국가를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사회가 그와 같이 비참한 사회와 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일조하겠다는 생각으로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책 출간의 경위>
우리의 이러한 노력이 보충의견을 낸 안창호․조용호 재판관과 다수의견에 참여한 박한철 재판소장과 이정미․이진성․김창종․강일원․서기석 재판관의 눈에는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피음사둔(詖淫邪遁)’, 즉 ‘편파적인 말, 함부로 하는 말, 간사한 말, 회피하는 말’에 놀아난 “쓸모 있는 바보”들에 불과하였습니다. 소수의견을 개진한 김이수 재판관조차도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니, 이 사건 심판이 얼마나 편파적인 분위기 속에서, 합리적인 법리에 근거한 토론과는 무관하게, 편 가르기 식으로 결정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소송대리인단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 진행에 최대한 협조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하였으나,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 기념일에 8:1이라는 압도적인 의견 분포로 해산결정을 선고하였습니다. 소송대리인단의 노력은 김이수 재판관의 소수의견으로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소송대리인단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죄인이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인 정당을 강제적으로 정치의 장에서 축출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들의 자격마저 상실시켰습니다. 과연 헌법재판소에 그러한 권한을 행사할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것일까? 헌법적·법적 근거 없이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케 하는 것의 심각성에 비추어 그 사실인정은 엄격한 증거법칙에 입각해야 하고, 그 판단은 올바른 법리와 보편적인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 해산결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해산결정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되고 분석되고 평가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해산결정을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소송대리인단의 일원인 전영식 변호사가 최종 변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비록 법정에서의 절차는 종결되었지만 시민사회에서의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우리 사회는 해산결정의 파고를 넘어야만 하는데, 그 첫 작업은 해산결정에 대한 치밀한 분석일 것입니다. 이 사건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한 소송대리인단으로서 해산결정에 대해 1차적으로 분석하여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최소한의 역사적 책무를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평석에서는 해산결정의 진행절차와 그에 관련된 쟁점들, 청구의 적법성, 정당해산심판제도의 기본 법리와 피청구인의 구체적인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 정당해산요건인 구체적 위험성과 비례원칙 충족 여부, 국회의원 자격 상실, 그리고 해산 결정에 대한 우려 등을 이 사건 결정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문제를 간단하게 검토했습니다.
이 책에는 이재화 변호사, 정태호 교수, 한상희 교수의 대담도 수록했습니다. 이재화 변호사는 다른 야당 비례대표 후보였음에도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하여 치밀하게 변론을 준비하고, 심판정에서 부당한 진행에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정태호 교수는 피청구인 추천 참고인으로서 정당해산제도의 법리와 독일의 사례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고 심판정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했으며, 재판관들과 대리인들의 질문에 답변했습니다. 한상희 교수는 정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직후부터 헌법학자로서 그 부당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해주었습니다. 세 분의 대담은 평석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줌과 동시에 평석에 담기 힘든 내용까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해산결정의 문제점>
○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해산결정에서는 다수의견을 ‘법정의견’으로, 소수의견을 ‘반대의견’으로 칭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법정의견과 반대의견이라는 용어 대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칭했습니다. 재심 등의 방법으로 다수의견이 폐기되고 소수의견이 헌법재판소의 공식의견으로 되는 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한 것입니다.
○ 졸속처리
정당해산심판은 2013년 11월 5일 청구된 후 크리스마스이브인 2013년 12월 24일 1차 변론준비절차기일을 가진 이래 준비절차기일 2회, 변론기일 18회를 2주 내지 3주 간격으로 숨 가쁘게 진행했습니다. 서증으로 청구인은 갑 제2907호증까지, 피청구인은 을 제908호증까지 제출했습니다. 양쪽 참고인 3명씩 6명, 증인 6명씩 12명을 신문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국립중앙도서관장,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장,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으로부터 사실조회 결과도 회신받았습니다. 대법원을 비롯한 전국 각급 법원으로부터 확정된 국가보안법 사건 기록, 진행 중인 소위 내란 관련 사건 기록과 국가보안법 사건 기록을 송부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전체 재판기록은 175,000여 쪽에 이릅니다.
이 사건 심판이 청구되고 선고되기까지는 13개월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반면에 1951년 11월에 청구된 독일 공산당 해산사건은 1956년 8월에 해산 결정이 선고됨으로써 약 57개월의 기간이 걸렸습니다. 선고기일의 통지가 2일 전에 이루어졌다는 점도 일반적인 사건 처리와 비교하여 이례적입니다. 선고된 후 2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증거목록이 작성되지 않아서 증거목록을 복사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1월 29일 직권으로 경정결정을 하였습니다. 「2014. 12. 19. 선고한 결정의 이유 중 결정서 제48면 제18, 19행의 “윤OO(「민중의 소리」대표, 제19대 총선 성남 중원구 피청구인 예비후보)”, 제57면 제4, 5행의 “인천시당 위원장 신창현”을 각 삭제하고, 제47면 제4행의 “한청연단체협의회”를 “한국청년단체협의회”로, 제56면 제16행의 “이의엽”을 “강사 이의엽”으로, 같은 면 제17행의 “위원 안동섭”을 “강사 안동섭”으로, 제121면 제20행의 “2017.”을 “2014.”로, 제134면 제14, 15행의 “(1천인 이상)”을 “(시·도당별 1천인 이상)”으로, 제140면 제12행의 “의원, 비례대표”를 “의원 31인, 기초 비례대표”로, 제259면 제7행의 “위원”을 “강사”로 각 정정하는 것으로 경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스스로 다수의견이 엉터리로 작성되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명백하게 사실관계 자체를 잘못 적은 부분도 있고, 단순한 오기로 보이는 실수도 있습니다. 졸속 결정 과정에서 빚어진 참사로 경정결정의 한계를 넘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과연 최고 사법기관의 결정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조차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 절차 준용과 재판 중인 기록 송부의 문제
사상 초유로 진행되는 정당해산심판은 절차 진행 하나하나가 새로운 문제였고, 그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우면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당장 형사절차를 준용할 것인지 민사절차를 준용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청구인 측에서는 민사소송 절차가 준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피청구인 측은 형사소송 절차가 준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제2차 준비절차기일에 민사소송 절차가 준용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피청구인 측은 2014년 1월 7일 당해 헌법재판소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4년 2월 27일 결정을 선고했습니다. 전원 기각 결정 의견이되, 김이수 재판관만은 별개의견으로 민사소송 절차의 준용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위 결정에서 보인 의견 분포(8:1)는 정당해산심판 본안 결정 때도 동일하게 유지되었습니다. 그만큼 정당해산심판절차에서 증거능력과 입증 정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의 적용이 중요했다는 의미입니다. 정당해산심판 절차가 민사소송 절차로 진행되는 바람에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못하여 법정에 나올 수조차 없었던 증거들이 모두 증거능력을 인정받고 심판정에 나왔으며, 불리한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피청구인의 방어권은 중대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헌법재판이 넘쳐나는 ‘쓰레기’들로 오염되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추 또는 범죄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의 기록’에 대한 송부를 요구할 수 있는지도 문제로 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법 제32조는 위와 같은 기록에 대해 송부를 요구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심판 진행 당시 소위 내란 관련 사건은 재판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 기록을 검찰 또는 법원으로부터 송부받아 이를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청구인은 각 법원과 검찰청에 대해 재판 중인 기록의 인증등본송부촉탁을 신청하였고, 수명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고 각 법원과 검찰청에 송부촉탁공문을 발송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피청구인 측은 2014년 1월 6일 수명재판관의 문서인증등본 송부촉탁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법 제32조 단서를 위반했다고 이의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제3차 변론기일에 위 이의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으로 인해 형사사건 절차가 끝나지도 않은 소위 내란 관련 사건의 모든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은 조서나 수사보고서 등까지도 정당해산심판 사건에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내란 관련 사건의 형사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정당해산 결정이 먼저 선고되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헌법재판이 일개 형사재판보다도 수준이 낮은 재판으로 전락하였습니다.
○ 실질적 방어권의 침해
다수의견은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정리했을 뿐이어서 청구인과 피청구인의 어느 쪽 주장을 받아들이고 어느 쪽 주장을 배척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청구인 주장과 피청구인 주장이 대립하는 쟁점에 대해서는 각각의 주장 요지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판결 작성 요령인데, 다수의견은 일반적인 재판서의 작성 원칙에도 위반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사실관계와 설시한 논증 자체에 그와 배치되는 주장을 배척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사법적 판단이란 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판단이 증거를 통하여 배척되고 인용되는 논리적 과정이 설명되어야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이렇게 본다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권력적 지배의 형식일 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정리하고 이에 대해 판단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헌법재판소 견해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형태로 작성된 다수의견은 사실상 피청구인의 실체적 방어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 이 사건 심판청구의 부적법성에 대한 판단 유탈
피청구인 측은 이 사건 심판청구가 ① 국무회의 심의 절차 차관회의를 생략한 채 대통령의 출석 없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는 하자가 있고, ② 최후수단성 원칙에 위반하여 심판청구권을 남용하였고, ③ 소수진보정당에 대한 탄압으로서 심판청구권을 남용하였으며, ④ 형평에 반하여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해산결정은 피청구인의 주장 중 이 사건 심판청구가 최후수단성 원칙을 위배하였다는 점, 형평에 반한다는 점 등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습니다.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서 청구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를 다투는 피청구인의 주장은 모두 이유 없다.”라는 한 마디로 끝나고 말아, 피청구인의 주장을 그냥 무시한 것으로서 판단유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사소송법 제451조 제1항 제9호는 “판결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판단을 누락한 때”를 재심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바,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민사소송 절차를 준용한 것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판단누락은 재심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 정당해산에 관한 기본 법리
해산결정은 정당해산에 대한 기본 법리에 대해서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동의하는 내용으로 정리하였는데, 기본 법리에서는 많은 쟁점에서 청구인 측 주장을 배척하고 피청구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선고기일에 박한철 소장이 결정을 선고하면서 기본 법리 부분을 설명할 때는 심판정에 일순간 기각결정을 선고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고, 기본 법리를 제법 그럴듯하게 정리한 것은 기각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림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피청구인의 주장을 수용한 대목은 ① 정당해산심판제도의 의의에 대해 방어적 민주주의 관점보다는 정당 보호가 주된 취지라고 인정한 점, ② 정당해산 요건으로서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민주주의적 측면과 법치주의적 측면에 근거한 입헌민주주의로 개념화하고, ‘민주적 기본질서’에 사유재산제도와 시장경제 등 경제질서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 점, ③ 정당해산심판에 있어 비례원칙이 적용되는 것으로 판단한 점, ④ 정당의 시적 범위에 대해 민주노동당 활동을 판단 대상에서 제외한 점 등이 그것입니다.
다만 ①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보다 넓은 개념으로 파악하고 ‘통치질서’가 아닌 ‘정치적 질서’로 이해함으로써 그 위배의 시점을 앞당기고 위배의 판단범위를 보다 확장한 점, ② 정당의 목적과 활동 평가에서의 느슨한 태도로 인해 공식 강령 등 이외의 ‘숨겨진 목적’을 인정하고 개인 활동의 정당활동 귀속을 쉽게 인정한 점, ③ ‘실질적 해악을 초래할 구체적 위험성’을 사실상 형해화한 점 등은 국제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문제점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해산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정당입니다. 해산결정은 2011년 12월 13일에 창당된 통합진보당이 그 대상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해산사유로서의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은 통합진보당 자체의 목적 또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청구인의 원래 주장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지하혁명조직인 ‘RO’가 피청구인을 장악하였고(‘RO’는 전위조직이고, 피청구인은 전위조직의 지배를 받는 하위의 전술적 대중정당에 불과), 피청구인은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를 그 목적으로 하며, 2013년 5월 10일 및 12일 모임(이하 ‘이 사건 모임’)에서 드러났듯이 폭력 및 무력으로 국가전복을 도모하는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구인이 주장하는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한다면 검찰은 ‘RO’ 자체를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 기소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은 내란음모 혐의로 관련자들을 기소하면서도 ‘RO’ 자체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내란 관련 사건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은 ‘RO’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부인하였습니다.
1심인 수원지방법원은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인정하고 내란음모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했지만,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RO’의 존재를 부정했고, 내란음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단지 2명의 내란선동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항소심 판결에 대해 검사와 피고인 측이 모두 불복하여 형사사건에 대법원에 계류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청구인은 이 사건에서 ‘RO’를 매개로 한 주장을 민혁당 잔존세력, 경기동부연합 등으로 변경하여 주장했습니다. ‘RO’의 존재와 내란음모 혐의는 피청구인 해산의 가장 결정적인 사유였는데, 이 두 가지가 법원 판결에 의해 부정되었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그 근거가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사판결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적어도 위 형사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다수의견은 ‘RO’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이를 ‘피청구인 주도세력’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대체해서 사실상 ‘RO’가 존재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다수의견은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이념적 성향을 밝히기 위해 그들의 과거 행적을 추적하여 설시했으나, 기본적인 사실인정에서부터 오류가 여기저기서 발생했고, ‘주도세력’이란 개념 자체가 자의적이고, 그 범주나 외연도 확정되지 않았으며, 설득력 있고 확실한 증거에 의하여 분명하게 입증된 바도 없고, 더군다나 대법원 판결에 의해서는 ‘RO’의 실체가 부정되었습니다.
○ ‘숨은 목적’과 ‘퍼즐 맞추기’의 문제점
다수의견은 정당해산 요건으로서의 목적과 관련하여 ‘숨은 목적’ 또는 ‘진정한 목적’을 설정하였는데, 이는 공개대중정당의 속성을 무시한 것입니다. 해산결정 된 독일 사회주의제국당은 나치즘을, 독일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터키 복지당은 신정정치를 각각 목적으로 표방하고 이를 강령에 공개적으로 명시했습니다. 강령에 명시된 목적 자체가 상대주의에 근거한 다원적 민주주의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점이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강령이나 정강·정책 또는 선거공약 등 공식적으로 발표된 내용만으로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기에 다수의견은 ‘숨은 목적’을 동원한 것입니다. 다수의견은 통합진보당 자체가 아니라 임의적으로 설정한 ‘주도세력’과 관련된 온갖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서 파편(퍼즐 조각)들을 찾아내 이를 ‘퍼즐 맞추기’를 통해 꿰어서 통합진보당의 ‘숨은 목적’을 가공해 냈습니다. ‘퍼즐 맞추기’에 의한 ‘숨은 목적’ 찾기 논법은 피청구인 당원들의 과거 행동을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혹은 사적인 파편(조각)들을 찾아내어 그중에서 위헌의 의심이 있는 조각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큰 그림, 즉 ‘숨은 목적’을 짜 맞추는 것입니다. 당원 중 일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거나, 북한 간첩이 일부 당원들과 접촉하려고 했다든가, 통일방안이나 ‘진보적 민주주의’ 등의 정책들이 북한의 그것과 외형상 유사하다든가, 북한의 3대 세습이나 인권상황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다는 등 헌법상 정당해산제도와는 전혀 무관한 사유들만을 조합해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숨은 목적 및 퍼즐 맞추기 논리는 소수의견이 지적한 바와 같이 결론적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 참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 피청구인 구성원 대다수는 ‘숨은 목적’이나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또한 이에 동의하지도 않았다는 점 등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퍼즐 맞추기는 유추해석의 방법이 개입함으로써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가능하게 하고, 몇몇 당원들의 의심스러운 행동에서 피청구인이라는 단체의 ‘숨은 목적’을 추정해 내는 전형적인 심정형법의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 북한보다 더 북한스럽고 북한적인 태도
통합진보당의 목적은 ‘진보적 민주주의’이고, 진보적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자주·민주·통일·생태’로 규정할 수 있다.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삭제한 뒤 진보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그 과제로 ‘자주·민주·통일’을 제시한 것은 북한의 주장과 그 내용이 같거나 매우 유사한 것으로서 북한의 지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으나, 이는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입증된 바가 전혀 없습니다.
청구인은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해방정국에서 주장된 진보적 민주주의 가운데 김일성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수의견은 “피청구인의 이념적 지향점으로서의 진보적 민주주의는 그 강령상 문언에서 드러나는 의미와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의도하고 있는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면서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강령상 목표는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을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피청구인의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 변혁을 위한 강령적 과제와 순위, 변혁의 주체 및 주권의 소재와 그 범위, 변혁의 대상, 변혁의 전술적 방법, 변혁의 목표,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서 북한의 민족해방민주주의변혁론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라고 인정했습니다. 이에 반해 소수의견은 피청구인의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동조하기 위해 도입된 것도 아니고, 그 내용이 북한의 주장과 같지도 않다고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청구인은 재판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모든 활동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했고,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으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붉은색 안경을 쓰고 사물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붉게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격입니다. 피청구인이 어떻게 하더라도 청구인은 잘라 내거나 늘려서 침대 길이에 맞게 가공했습니다. 그래서 피청구인 대리인이 청구인의 태도가 ‘북한보다도 더 북한스럽다.’고 지적하자, 청구인 대리인도 그런 태도를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수의견 역시 마찬가지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사용하는 용어나 주장의 동질성 내지 유사성을 이유로 통합진보당이 북한을 추종한다고 보고 정당해산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의 해석을 독자적으로 하지 못하고 북한의 주장에 의존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 헌법 해석을 북한 주장에 종속시키는 다수의견이야말로 북한 추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 주장과의 동질성 내지 유사성을 정당해산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소수의견이 우려하는 바와 같이 진보적 이념 일반에 대한 억압으로 귀착되게 됩니다.
○ 내란 관련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선고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소위 내란 관련 사건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판결 선고를 기다리지 않고 해산결정을 하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소위 내란 관련 사건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판결과 같이 내란음모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이석기와 김홍열 두 사람의 내란선동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그리고 RO의 존재에 대해서는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3인의 대법관(이인복, 이상훈, 김신)은 내란선동죄도 무죄라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위 대법원 판결은 헌법재판소 해산결정의 가장 중요한 축을 부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내란음모죄 인정에 필요한 실질적 위험성도 인정되지 않는 마당에 정당해산에 필요한 구체적이고 명백하며 급박한 위험성을 인정할 여지는 없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지도 않고 서둘러 해산결정을 한 것은 대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 선고를 예상하고, 그와 같은 경우 해산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모두 이 사건 모임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의 활동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① 이 사건 모임의 개최가 피청구인이나 피청구인 경기도당의 규약에 근거한 ‘의사결정절차’에서 정식안건으로 상정되어 ‘채택’된 사실이 없다는 점, ② 대관비용 등 모임 비용을 참석자들이 1만 원씩 갹출하여 부담하였고 피청구인이나 경기도당의 ‘재정’이 위 회합 개최의 기본비용으로 투여된 사실이 없다는 점, ③ 이 사건 모임이 피청구인 또는 경기도당의 활동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점, ④ 이 사건 모임에서 있었던 이석기 등의 발언이 피청구인과는 무관하게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고, 또한 그 내용이 피청구인 지도부를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피청구인의 입장에 반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모임을 피청구인 경기도당의 활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으로서 경기도당 임원들이 개별적으로 결정·준비·진행한 행사로서 경기도당의 공식적인 행사로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소수의견의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 부정경선 등 일상적 정당 활동의 해산사유 해당 여부
활동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와 관련하여 청구인 측은 민주노동당 시절의 많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주장했지만, 해산결정은 다수의견이든 소수의견이든 통합진보당 시기에 발생한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및 관악을 지역구 여론 조작사건에 대해서만 판단했습니다. 다만 정당해산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다수의견은 긍정했고, 소수의견은 부정함으로써 견해가 갈렸습니다.
위와 같은 당내 또는 야권단일화 등의 문제는 통치질서의 문제가 아니므로 정당해산사유로서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통치질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보게 되는 경우 위와 같은 사유는 언급될 가치조차 없게 됩니다. 선거 과정에서의 부정행위나 당내에서의 폭력행위를 정당해산 사유로 인정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정당해산으로부터 자유로운 정당은 단 하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등 집권가능성이 높은 정당의 경우 선거 과정에서의 범죄행위는 피청구인보다 훨씬 더 많고 그 위험성도 더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피청구인 고유의 문제로 부각시키고 해산사유로까지 인정하는 것은 형평원칙에 크게 어긋납니다.
○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명백하고 급박한 위험) 여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은 모두 정당해산사유로서의 ‘위배될 때’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저촉만으로는 안 되고,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발생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정당이라는 단체의 위헌적 목적은 그 정당이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한 현실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인정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구체적 위험성 요건을 사실상 형해화하여 위헌정당해산제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다수의견은 통합진보당이 공식적 목적인 진보적 민주주의 이외의 ‘숨은 목적’을 추구한다고 인정하였는데, ‘숨은 목적’은 숨은 상태로 남아 있으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구체적 위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소수의견도 이 사건 모임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인정했으나, 이 사건 모임에서는 말뿐이었고 실제적인 준비에 나아가지는 못했으므로 그 논의 내용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명백하고 급박한 위험’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소수의견에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 비례원칙의 충족 여부
해산결정은 청구인의 주장과는 달리 정당해산 결정에 있어 비례원칙이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 심판청구가 비례원칙을 충족하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수의견은 비례원칙을 충족한 것으로, 소수의견은 비례원칙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달리 판단했습니다.
보충의견은 『한비자(韓非子)』 「설림상편(說林上篇)」의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277).”는 구절을 원용했고,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최종변론에서 역시 한비자(韓非子)』의 ‘제궤의혈(堤潰蟻穴)’, 즉“개미구멍으로 큰 둑이 무너진다.”는 구절을 원용했습니다. 법(法)을 군주의 통치수단으로 이해한 2,250여 년 전의 인물인 한비자를 주로 인용하는 것에서 법치에 대한 인식수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충의견은 “우리의 미래와 생존에 관한 판단에는 무엇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나, 위 구절은 예언가나 정치가라면 귀감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헌법재판관이 엄격한 판단을 해야 할 정당해산심판 사건에 원용할 수 있는 구절은 아닙니다. 싹이 나지도 않았고, 아무런 위험성도 발현되지 않았는데, 선제적으로 그 가능성의 씨앗을 죽여 버리는 것은 엄격한 증거재판주의 원칙,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원칙, 정당해산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한비자는 사물이 아직 일어나기 전에 행하고 이치가 아직 밝혀지기 전에 움직이는 것을 가리켜 ‘전식(前識)’이라 하고, 전식은 근거 없이 제멋대로 헤아리는 억측이라면서 ‘전식이란 도의 화려한 수식에 불과하고 어리석음의 시작이다(前識者 道之華也 而愚之始也)’라는 노자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섣불리 넘겨짚는 것은 어리석음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이 강조한 바와 같이 재판관은‘삼가고 또 삼가야[欽欽]’ 합니다. 다수의견이 위의 ‘견미이지맹 견단이지말’이란 구절을 인용한 것만 보아도 다수의견이 먼저 통합진보당을 해산하여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후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재판절차를 진행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제궤의혈’ 고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둑에 개미구멍이 있으면 개미구멍을 막으면 되지, 그렇다고 해서 둑을 허무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과잉입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통합진보당의 일부세력을 개미구멍으로 본 것인데, 일부 세력에 대해 형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것은 개미구멍을 막는 것으로 충분함에도 둑을 허무는 격입니다. ‘모기 보고 칼을 뽑는(見蚊拔劍)’,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쇠뿔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矯角殺牛)’ 또는 ‘참새 잡기 위해 대포 쏘는’ 우(愚)를 범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의견의 가치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소수의견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발상을 포용하고 받아들인 나라는 융성하였고, 문을 닫고 한 가지 생각만 고집한 나라는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바다는 작은 물줄기들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그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는 법이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민주주의야말로 바로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들을 포용해 가는 것을 그 제도의 본질로 한다.” 는 김이수 재판관의 논지는 우리 사회가 깊이 새길 가치가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대중정당으로서 모든 활동을 공개하였으므로 통합진보당 활동으로서 국가안위에 위협이 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정부는 형사적·행정적으로 충분히 즉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통합진보당 구성원 중에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회의원의 활동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직분에 위배되거나 국가 안위를 해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여 각 소속기관의 자격심사나 수사기관에의 고발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대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이 이 사건 심판청구에 의해 해산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불허하는 불행한 전체주의 사회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 국회의원 자격 상실
다수의견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 지역구 의원이든 비례대표 의원이든 불문하고 그 자격을 상실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소수의견은 정당해산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원 자격 상실에 대해서는 판단할 필요가 없어 그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습니다. 실정법상 아무런 근거 규정이 없어 치열한 논리 싸움과 의견 대립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다수의견은 너무도 간단히 아무런 이견 없이 일치된 견해를 취했습니다. 적어도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표기관이기 때문에 그러한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헌법재판소가 그 자격을 상실시킬 권원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국민이 정당을 투표한 것이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헌법재판소가 그 자격을 상실시킬 권한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다수의견은 정당해산제도의 본질이라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논리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의 자격을 상실시켰습니다. 이는 법률에 근거도 없고,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어 부당합니다.
○ 해산결정에 대한 우려
다수의견은 해산결정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진보정당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 이 결정을 통해 향후 민주적 기본질서의 존중 아래 한층 더 성숙한 민주적 토론과 우리 사회의 이념적 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견해가 압도적입니다.
보충의견은 더 나아가 뻐꾸기 새끼를 자기 새끼로 오인하는 뱁새의 예를 들면서 피청구인의 활동을 대역행위로 단정하고 불사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비장하게 선언했습니다. 왕조시대에 왕이 반역죄인(反逆罪人)에게 사약(死藥)을 내리는 듯한 어투입니다. 여기에 이르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법리나 논리는 찾을 수 없고, 오로지 적대감과 증오심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수준을 자기 새끼인지 뻐꾸기 새끼인지도 구분 못하는 뱁새 정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도 수차 청구인 대리인들에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지나치게 자학적으로 평가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보충의견이야말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능력에 대한 지독한 불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뻐꾸기 알도 함께 품은 뱁새가 있다고 해서 뱁새가 멸절되지는 않습니다. 공생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상과 이념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며, 정당해산은 정당 지지자가 많은지 적은지를 따지는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견의 포용 문제입니다.
○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문제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 자체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더욱 국민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 의견 분포였습니다. 소수의견을 택한 재판관이 단 1명밖에 없었고, 국회의원직 상실에 대해 다수의견 내에서 다른 의견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헌법재판소 구성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소수자 보호, 인권 옹호, 국가권력 남용 견제라는 헌법재판소의 본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다수자의 견해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역할에 그친다면 굳이 존재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헌법재판소 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결론적으로 유신 논리의 부활
기본 법리에서는 피청구인 주장을 많은 부분 수용했으나, 실제 이 사건에 적용함에 있어 다수의견에서는 기본 법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선입견과 편견에 근거한 독단적이고 공안적인 시각만이 관철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분단 상황이라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입니다. 다수의견은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 앞에서 유보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유신(維新)을 합리화하던 논리가 되살아났습니다.
아무리 개별국가의 특수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법치주의에 근거한 입헌민주주의의 보편성에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의한 통치질서를 유지하고 이성에 의한 문명국가를 자임하는 한, 분단의 사정과 같은 특수성은 헌법해석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 위원회(약칭 ‘자유권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에 대한 검토 후 최종의견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권고하면서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상황이 과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으며, 사상 등이 적성단체의 주장과 일치하거나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사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이유로 해서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를 무시함으로써 국제적 기준에 눈감은 다수의견은 바다를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井蛙)’ 또는 얼음을 모르는 ‘여름 곤충(夏蟲)’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의의와 바람>
해산결정으로 사마천(司馬遷)이 2,100여 년 전에 통탄한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黨所謂天道 是邪非邪)”라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해산결정으로 우리 사회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 즉 ‘2분간의 증오’를 통해 북한에 대해 강력한 톤으로 비난하지 않으면 종북이 되고, 북한이 사용하는 ‘자주, 민주, 통일, 진보적 민주주의, 일하는 사람’ 등의 용어를 사용하면 종북으로 매도되므로 위와 같은 용어들이 사라지는 그런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백송(白松)은 후세에 매카시즘의 광기 어린 판결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고 전할 것입니다.
해산결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이유로‘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가 유보’되는 야만적인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는 것이 국민 모두의 행복과 자존을 위해 필요합니다.
우리 소송대리인단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진 사람,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 그리고 이 사건 결정에 대해 연구 및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 특히 헌법을 배우고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예비법조인과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 그리고 오늘 좌담회에서 인삿말을 건넨 강병기 민주수호 공안탄압 대책회의 강병기 대표의 영상을 같이 올립니다. 차근차근 흔들림없이 준비하여 박근혜와 헌재가 그들의 반역사적 결정을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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