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REMIND] 쌍용자동차 앞, 천막농성 마지막날 구사대에 깨진 민주노동당 당직자 1人의 소회

2022. 3. 3. 23:00읽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되어야 하는 나만의 작은 이유.
어제까지 한솥밥을 먹던 노동자가 , 조합원이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어 , 그리고는 노동자 끼리 입장이 달라져 적보다 더한 적이 되어 서로를 뜯어먹게 만드는 그 '순간'도,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존재들'도 더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모든 모순의 결과로 '죽은자가 진짜 죽는' 것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쌍용차 범대위 재정비. 이번엔 모든 '산 사람의 힘'으로이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사라져간 서른 명 노동자의 영혼까지도 어깨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딱 한번 이기기.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도,그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고자 하는 것이 그것임을 모두가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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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공장 지붕에서는 노동자가 갈려나가고, 땅위에선 연대의 모든것이 갈려나갔던 그 다음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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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지요.
구사대가 천막당사를, 거기 있는 모든 천막을 다 쓸어버리고 쇠파이프로 사람 패기 직전에 저는 천막당사 바로 앞에 놓여진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인간의, 그 아비규환의, 그 폭력 횡행의 장면을 한컷 한컷 카메라에 주워담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거친 욕설과 물병들이 날아왔습니다.
"야 저새끼 뭐야!"
"찍지마! 내려와 새끼야!"
상관않고 계속 찍었습니다. 조중동, 공중파는 물론이고 경향 ,한겨레도 공장 안의 상황을 보도하느라 그 현장까지 신경쓰기는 어렵다 라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현장을 Full 버전으로 알려낼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는 일종의 사명감에 연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습니다.
내려가서 같이 싸울까 생각도 했지만 어떻게든 기록을 남겨 알려내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얼마간을 찍자 하니 뭔가 굉장히 단단한 것이 날아와 내 머리를 정통으로 맞추었습니다.
맞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좀 어지러워서 주저앉았습니다. 얼마 있자 하니 카메라로, 바지로 빨간색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피. 말도안되게 흘러내리는 선홍색의 피.
그들은 진작에 저를 노렸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구사대들이 욕설과 폭력을 일삼을때 마다 카메라를 들고 맨 앞에 나서서 그들을 찍으며 쌍욕도 듣고 물병도 맞으면서도 줄기차게 카메라를 들이댔거든요...
한참을 그러구 사진을 찍었습니다. 밑에 있던 몇몇 기자들이 깜짝 놀라서 촬영을 하더군요.
동시에 구사대 중의 한명이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올라와서 내려오라고 위협을 합니다. 그냥 보내줄테니 일단 내려오라고.
그 위에 있어봤자 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내려왔더니 그들은 나를 집단으로 폭행하고 카메라 ,캠코더, 심지어 넷북이 들어가 있는 가방까지 뺏았습니다. 마치 전쟁중에 상대 군인을 포로로 잡고 무장해제 시켜서 풀어주듯이.
그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눈에 뭐가 씌인듯 이미 인간의 눈빛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다 뜯겨진 천막당사 자리에 앉아서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누가 옆에서 부축을 합니다. 앰뷸런스가 도착한 모양입니다. 너무 울어서 반 실신 상태인 나를 앰뷸런스에 사무부총장님과 함께 싣고 메디웰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진정하고 응급실로 들어섰더니 부상자들이 넘쳐납니다. 전쟁상황의 야전병원을 보는 듯 합니다.
예닐곱 명의 사복경찰이 들이닥치더니 누워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름들을 묻기 시작합니다. 쌍용자동차 앞에 있었는지, 있었으면 집시법이나 영업방해,일반교통 방해 등으로 잡아가거나 소환하겠지요.
기가 막혀하는 보호자들이 형사들에게 따지면서 소란해지자 병원관계자들이 보다보다 안되겠는지 형사들보고 나가라고 했지만 형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변조사를 계속합니다. 응급환자에겐 안정이 제일 중요한데 그렇게 몰려다니면서 공포분위기 조성하면 어쩌란 말인지...
그렇게 누워 있자하니 쇠파이프를 든 열명 정도의 구사대에게 둘러싸여 집단폭행을 당한 선배 당직자가 도착했습니다. 저한테는 연세로 보나 운동 경력으로 보나 고참 당직자입니다.
링거를 반 이상 맞고 난 다음 부총장님과 그 선배 당직자, 경기도당 사무처장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다시 쌍용자동차고 나섭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정문 앞으로도 못가는 많은 사람들이 근처 아파트 부근에 다들 앉아 있습니다.
알고 지내던 많은 분들이 압박붕대를 머리에 두르고 나온 나를 보고는 다들 한마디씩 안부인사를 건네고 저는 머리 한번 더 터져도 좋으니까 카메라,캠코더,넷북 돌려받았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쇠파이프 맞은 선배당직자님과 그분의 가족과 함께 그분의 차를 타러 쌍용자동차 정문앞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거리에 나와있는 구사대들과 맞딱뜨렸습니다.
당연히 갖은 욕설과 비웃음이 난무했습니다.
나를 가리키며 "저새끼 저거 제일 독종이야"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민주노동당 유~ 명한 아저씨들 오셨네!" 라며 비웃는 사람들까지.
급기야 한명이 대빗자루로 내 배를 북~ 질러버렸습니다.
순간 조금은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다시금 폭발할 뻔 했지만 겨우 참았습니다.
그렇게 선배 당직자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했습니다.
"구사대들도 언젠가는 정리해고를 당할텐데 그때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싸워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와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그들을 위해 싸워야지요. 어차피 쌍용차의, 아니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초국적 독점 먹튀자본이고 구사대는 또 하나의 '억압받는 노동자' 들이니까요. 하지만 당분간은 그럴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고 그런 감정들을 추스리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과정 자체가 '운동' 이란 것이겠죠.
또다시 구사대에 대한 정리해고가 가시화되고 그 때 또다시 공권력과 구사대가 나타난다면 나는 또 정리해고자로 바뀐 지금의 구사대들의 입장에 서서 카메라를 들고 볼트맞으며, 쇠파이프 맞으며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입니다.

 

구사대들로부터 카메라를 돌려받게 될지, 아니면 새 카메라를 마련하던지 어느 경우에든 나는 끝까지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관점에서 카메라를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사회를 썩게 만드는 모든 '올바르지 않은 존재' 들이 국회의원보다 더 무서워하는 '카메라' 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민주노동당 중앙당 장우식 홍보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