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2. 16:07ㆍ보기
서울대와의 첫 인연은 초등학교 (그땐 국민학교라 불렀다) 때였다.
할머니가 "네가 들어갈 학교 미리 봐두라" 며 서울에 사는 작은아버지댁에 들른 김에
서울대학교의 상징물인 정문 앞에서 사진 한장 찍었었지.
그리고 어머니는 고3 내내 나에게 "데모하지 말그래이..." 하며 주위를 줬었지.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바램처럼 서울대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어머니의 바램처럼 '데모없는 삶'을 살지도 못했으니 상당한 불효자인건 사실 같다.
그런 내가 22년만에 서울대학교와 중요한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서울대민주동문회 주최 제 2회 서울대학교 민족민주열사추모제 영상 제작.
살떨렸다. 오랫만에 '오타확인'으로만 3시간 가까이를 쓴 5분이 약간 안되는 분량의 영상.
잠시 나는 당일 참여할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민주주의를 향한 단심'을 지켜온 사람부터 '헌법안의 진보'를 찾아 기웃기웃 거리는 사람들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퍼뜩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열사들의 외침을 단 한조각의 왜곡편집 없이 그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겐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 라는 성찰을 안겨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시간이 될 것이었다.
(부끄러워할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 무엇인가를 외치고 글로 남긴 열사들을 최대한 찾아내서
그들의 외침을 자막으로 처리했다.
그리고, 서울대 민주동문회의 투쟁 , 다른말로 2015년 우리 민중의 투쟁을 배경사진으로 올리니
너무나 이상하게도, 또는 너무나 분노스럽고 슬프게도
'단 한조각의 이질감' 도 없이 정확하게 싱크로되는 것이었다.
열사가 고발한 7,80년대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닮아가고 있었고,
열사의 외침은 그 잘못될 세상을 해결할 '정답' 이 되어 있었다.
다시한번 열사를 추모하며 열사의 뜻으로 살 것을 다짐해 본다.
아래에 김상진열사의 양심선언문과 조성만열사의 유서를 올린다.
그날, 열사의 외침은 여전히 '정답' 이다.
이미지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양심 선언문
더 이상 우리는 어떻게 참을 수 있으며 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어두움이 짙게 덮인 저 사회의 음울한 공기를 헤치고 죽음의 전령사가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다.
무엇을 망설이고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있단 말인가!
대학은 휴강의 노예가 되고, 교수들은 정부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어미닭을 잃은 병아리마냥 우리들은 반응 없는 울부짖음만 토하고 있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그릇됨이 아닐진대 우리의 주장이 결코 비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어떻게 더 이상 자존을 짓밟혀 불명예스런 삶을 계속 할 것인가. 우리를 대변한 동지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신음하고 있고, 무고한 백성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한다. 들으라! 동지여! 우리의 숭고한 피를 흩뿌려 이 땅에 영원한 민주주의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할 용기를 그대들은 주저하고 있는가! 들으라! 우리는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을,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모든 부조리와 악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비민주적 허위성을 고발한다. 우리는 유신헌법의 자기중심적 이기성을 고발한다.
학우여!
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전의 결의로 진격하자. 민족사의 새날은 밝아오고 있다.
그 누가 이 날의 공포와 혼란에 노략질 당하길 바라겠는가. 우리 대한 학도는 민족과 역사 앞에 분연히 선언한다. 이 정권, 끝날 때까지 회개치 못하고 이 민족을 끝까지 못살게 군다면 자유와 평등과 정의를 뜨겁게 외치는 이 땅의 모든 시민의 준열한 피의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역사는 이러한 사태를 원치 않으나 우리는 하나가 무너지고 또 무너지더라도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임을 재천명한다.
탄압과 기만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라. 우리는 이제 자유와 평등의 민주사회를 향한 결단의 깃발을 내걸어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가 도래했음을 민족과 역사 앞에 고발코자 한다.
이것이 민족과 역사를 위하는 길이고 이것이 우리의 사랑스런 조국의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길이며 이것이 영원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면 이 보잘 것 없는 생명 바치기에 아까움이 없노라. 저 지하에선 내 영혼에 눈이 뜨여 만족스런 웃음 속에 여러분의 진격을 지켜보리라.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나!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만천하에 울리게 보낼 것이다.
1975. 4. 11
서울농대 축산과 4년
김 상 진
이미지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그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막아져서는 안됩니다.
조국이 분단된 지 어언 44년, 일제치하의 조국을 구하고자 자기의 삶을 버리고 싸워갔던 자랑스러운 독립군의 정신은,인류를 자기 나라의 이익을 뽑아내는 장소로 여긴 미국에 의해서 땅에 묻힐 수밖에 없었으며 그 대리통치세력인 해방 후의 정권들(친미사대주의자인 이승만,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육군사관학교의 후예들, 이들의 반민족적 행동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에 의해서 이 땅의 주인인 민중들은, 어느 한 구석 성한 곳 없는 사회에서, 민족의 바램인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이야기만해도 역적으로 몰려 세상에서 삶을 뿌리 뽑힌 채 갈수록 비인간화되는 모습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몇년전 혈육을 부여잡고 말을 잇지 못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은 이 땅의 현실이며 노동형제들, 농민들, 학생, 공무원, 경찰, 사병 등등 반쪽이 된 조국의 구성원들이 처해있는 현실은 차마 양심을 가진 인간을 편안케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 모든 모습의 원인들은 바로 한반도를 본국의 이득을 위한 땅으로 여기는 미국과 그 대리통치세력인 군사정부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올해 열리는 올림픽도 미국과 현 군사정부의 기득권 유지에 필요한 행사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으며,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를 영구분단화하려는 것은 이 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입니다. 민족 문제의 해결은 조국통일로서만 가능하다는 사실로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는 미국과 군사정부의 반민족적 행위는 우리에 의해서 막아져야만 합니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축출되어야만 합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의 등장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을 동반했습니다. 민족의 독립을 외쳤던 제주도민의 학살인 4.3, 한국전에서 보여준 미군의 우리 민족(북한과 남한을 포함하여)에 가했던 살상, 5.16의 지원, 저 잊을 수 없는 80년 광주학살 등 오직 제국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미국의 모습은 이 땅을 단 한발의 원폭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상황을 유발하고 있으며, 더 이상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손으로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민족 문제의 해결은 미국을 축출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민족반역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군사정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합니다.
오직 정권욕에 가득찬 현 군사정부는 이 땅의 현실을 은폐한 채 미국에 대한 사대적인 태도를 표명하며 정권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조국의 운명을 그네들 손에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낳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민족의 한인 광주학살을 주도한 현 군사정부, 자랑스런 조국 아메리카의 후예들!
다가오는 올림픽은 반드시 공동개최되어야만 합니다.
분단고착화와 정권유지와의 타협에서 이루어질 올림픽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한과 북한이 같이 참여하여 민족화해와 민족통일을 이루는 기반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이후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살아야만 하는 현실 속에서 같은 형제라는 낱말을 잊고 살아 왔습니다. 통일이 국시가 아니라 반공이 국시인 현실 속에서 국민학교 음악책에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없어지는 것을 목격해야만 했으며, 퉁일에 대하여 논의했다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족쇄가 채워지는 현실을 뜬눈으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반민족적이고 도대체 누가 애국하는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현실,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랬을 때만이 진정한 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으며 한 민족이 함께 어울어지는 세상에서 평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남북공동올림픽을 거부할 집단은 현 군사정부와 그 밑에서 민족을 팔아먹는 사람들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올림픽은 민족화해의 장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찢어진 우리나라를 하나 되게 해야 합니다. 진정한 언론자유의 활성화, 노동형제들의 민중생존권 싸움, 농민형제들의 뿌리 뽑힌 삶의 회복, 민족교육의 활성화,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문제를 쌓아놓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우리의 형제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현실은 차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에게 더 이상의 자책만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으며, 기성세대에 대한 처절한 반항과, 우리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남겨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만을 깊게 간직하게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른 아버님, 어머님 얼굴 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척박한 팔레스티나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한 인간이 고행 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양심선언문과 유서 이미지가 저작권상 문제있을 시 바로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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